
고구마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여름이 짧고 서늘한 시애틀에서 고구마를 키운다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올해 직접 도전해 보았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순은 잘 만들었고 밭에서 덩굴도 무성하게 자랐지만, 가을에 캐 보니 두더지 굴 주변에서 갉아 먹힌 고구마가 많았고 속도 기대만큼 알차게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처음 키워 본 것치고는 배운 것이 많았고, 앞으로 재미있게 계속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 재배 과정과, 미국 북서부 지역의 대학 Extension 자료와 인기 텃밭 블로그를 읽고 정리한 개선 방법을 함께 소개합니다.
서늘한 시애틀에서 고구마가 어려운 이유
고구마가 원하는 조건
고구마는 열대 원산 작물이라 다음과 같은 조건을 좋아합니다.
- 흙 온도 18°C(65°F) 이상, 밤 기온 약 16°C(60°F) 이상
- 서리 없는 따뜻한 기간 90~120일
- 하루 6~8시간 이상의 직사광선
- 물 빠짐이 좋고 부드러운 흙
시애틀의 현실
시애틀은 5월까지도 밤이 쌀쌀하고, 흙이 충분히 데워지는 시기는 보통 6월 초입니다. 가을에는 9월 말부터 기온이 빠르게 떨어집니다. 결국 고구마가 자랄 수 있는 기간이 아슬아슬하게 짧습니다. 그래서 시애틀 고구마 재배의 핵심은 품종 선택, 순을 미리 키우기, 땅을 데우기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시애틀 고구마 재배 과정
1단계: 시애틀에 맞는 품종을 골라 주문
먼저 인터넷에서 서늘한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는 품종을 찾아 주문했습니다. 동네 마트 고구마로 순을 키울 수도 있지만, 마트 고구마는 대부분 따뜻한 남부 지역에 맞는 품종이라 우리 지역에서는 다 자라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2단계: 화분에 일찍 심어 낮에는 햇빛, 밤에는 실내로
고구마를 받은 뒤 화분(pot)에 일찍 심었습니다. 봄밤은 아직 추웠기 때문에 낮에는 밖에 내놓아 햇빛을 받게 하고, 밤에는 집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매일 들고 나르는 일이 번거로웠지만, 이렇게 하니 싹이 건강하게 올라왔습니다.
3단계: 순을 잘라 다시 심어 순 늘리기
싹이 자라 순이 길어지면 잘라서 다시 흙에 꽂았습니다. 고구마 순은 마디에서 뿌리가 잘 나기 때문에, 잘라서 심은 순이 또 자라고 그 순을 다시 잘라 심는 방식으로 순의 개수를 계속 늘려 갔습니다. 적은 양의 씨고구마로 많은 모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 경제적이었습니다.
4단계: 검은 비닐과 비닐 속 물 공급 시설
날씨가 충분히 따뜻해진 뒤 밭에 검은 비닐을 깔았습니다. 그리고 비닐 아래에 물을 줄 수 있는 관수 시설을 설치해 순을 심었습니다. 검은 비닐은 땅을 데워 주고, 비닐 아래 관수는 비닐 위로 물을 주지 않아도 뿌리에 물을 바로 공급할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5단계: 가을 수확, 그리고 두더지
가을에 수확해 보니 밭 곳곳에 굴이 있었고, 갉아 먹힌 고구마가 많았습니다. 남은 고구마도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속이 꽉 차지 않은 것이 많았습니다.
자료를 보고 정리한 실패 원인과 개선 방법
고구마가 알차게 들지 않은 이유
여러 자료를 비교해 보니 고구마가 작거나 덜 차는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였습니다.
- 생육 기간 부족: 따뜻한 기간이 90일이 안 되면 덩이가 커질 시간이 모자랍니다. 시애틀에서는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 질소 과다: 질소 비료나 거름을 많이 주면 덩굴만 무성하고 고구마는 작아집니다.
- 딱딱하거나 무거운 흙: 점토질 흙에서는 덩이가 커지지 못합니다.
- 불규칙한 물 주기: 덩이가 굵어지는 시기(심은 뒤 약 70~90일)에 물이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크기가 줄어듭니다.
- 품종이 맞지 않음: 생육 기간이 긴 품종은 서늘한 지역에서 다 자라지 못합니다.
제 경우는 덩굴이 아주 무성했던 것을 보면 흙에 질소가 많았을 가능성이 있고, 시애틀 특성상 생육 기간이 짧았던 것도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 바꿔 볼 것
- 비닐을 심기 2~3주 전에 미리 깔기: 검은 비닐은 땅 온도를 4~5°C 정도 높여 줍니다. 미리 깔아 두면 심을 때 이미 흙이 데워져 있습니다.
- 높은 이랑 만들기: 15~20cm 높이의 이랑을 만들면 흙이 더 빨리 데워지고 물도 잘 빠집니다.
- 거름은 심기 전에 조금만: 잘 숙성된 퇴비를 조금 넣고, 자라는 동안에는 비료를 주지 않습니다.
- 순 굳히기: 실내에서 키운 순은 심기 5~7일 전부터 밖에 내놓는 시간을 늘려 바깥 환경에 적응시킵니다. 제가 화분을 낮에 내놓았던 것이 바로 이 과정이었는데, 순을 잘라 새로 꽂은 뒤에도 똑같이 해 주면 좋겠습니다.
- 수확 전 3~4주는 물 줄이기: 덩이가 갈라지는 것을 막고 저장성이 좋아집니다.
두더지 피해, 정말 두더지일까?
자료를 찾아보며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두더지는 주로 지렁이와 땅속 벌레를 먹는 동물이라 고구마를 직접 갉아 먹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오히려 들쥐(vole)가 두더지가 파 놓은 굴을 통로로 이용해 고구마를 갉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굴은 두더지가 만들고 고구마는 들쥐가 먹는 셈입니다.
그래서 대책도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 철망 깔기: 이랑을 만들기 전에 6mm(1/4인치) 철망을 바닥과 옆면에 15cm 이상 깊이로 묻으면 땅속 침입을 막을 수 있습니다. 넓은 밭이 어렵다면 레이즈드 베드 바닥에 철망을 까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 주변 정리: 밭 주변의 잡초, 낙엽 더미, 덮개 아래는 들쥐가 숨기 좋은 곳입니다.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 검은 비닐의 함정: 비닐 아래는 따뜻하고 포식자 눈에 띄지 않아 들쥐가 좋아하는 은신처가 될 수 있습니다. 비닐 가장자리를 자주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 일찍 캐기: 덩이가 어느 정도 찼다면 피해가 커지기 전에 조금 일찍 수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수확 후 큐어링과 보관
고구마는 캐자마자 먹는 것보다 큐어링(curing)을 거쳐야 맛있습니다.
| 단계 | 온도 | 습도 | 기간 | 목적 |
|---|---|---|---|---|
| 큐어링 | 27~30°C | 높게(80% 이상) | 7~14일 | 상처 치유, 녹말이 당으로 변함 |
| 보관 | 13~16°C | 보통 | 4~6개월 | 오래 저장 |
- 캔 고구마는 씻지 말고 흙만 살살 털어 냅니다.
- 집에서는 보일러실이나 따뜻한 방에 상자를 두고 젖은 수건을 덮으면 습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 냉장고 보관은 피합니다. 13°C 아래에서는 속이 상하고 맛이 떨어집니다.
- 갉아 먹힌 고구마는 상처 부위를 잘라 내고 먼저 먹습니다.
참고한 자료 3곳을 읽고 느낀 점 (나의 비평)
워싱턴주립대(WSU) Extension: 지역 맞춤 정보가 가장 정확
워싱턴주 북부에서 시험 재배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지역의 주요 해충인 와이어웜(방아벌레 애벌레)에 강한 'Cascade' 품종과 'Beauregard', 'Covington'을 소개합니다. 질소가 고구마 수와 크기를 줄인다는 점, 포기당 0.5kg 정도를 기대하라는 현실적인 수확량도 알려 줍니다.
나의 생각: 시애틀에서 고구마를 키운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자료입니다. 다만 땅속 동물 피해에 대한 내용은 없어서, 저처럼 두더지나 들쥐가 많은 밭이라면 다른 자료를 함께 봐야 합니다.
Cheap Vegetable Gardener: 북서부 텃밭인의 실전 팁
시애틀 근교 레드먼드에서 직접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5월 말보다 6월 첫 주에 심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조언합니다. 검은 비닐을 2~3주 전에 미리 깔면 흙 온도가 크게 올라간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나의 생각: 제 경험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라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다만 물을 적게 주라는 조언은 모래가 많은 흙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덩이가 굵어지는 시기에는 꾸준한 수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Tiny Garden Habit: 고구마가 작은 이유 정리
고구마가 작게 자라는 원인을 수확 시기, 흙, 질소, 물, 햇빛, 품종 여섯 가지로 나누어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나의 생각: 원인을 점검하기에는 좋은 체크리스트입니다. 하지만 따뜻한 지역 기준으로 쓰여 있어, 시애틀처럼 생육 기간 자체가 부족한 지역의 문제는 크게 다루지 않습니다. 서늘한 지역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기간 확보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첫 고구마 농사에서 배운 것
처음 키운 고구마는 두더지 굴 옆에서 상처투성이로 나왔고, 속도 기대만큼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순을 직접 키워 늘리고, 검은 비닐과 관수 시설로 서늘한 시애틀에서도 고구마 덩굴을 무성하게 키워 낸 것은 분명한 성과였습니다.
내년에는 비닐을 일찍 깔아 땅을 데우고, 거름을 줄이고, 철망으로 땅속 동물을 막는 것까지 더해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시애틀처럼 서늘한 지역에 사시는 분들도 너무 겁먹지 말고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작물입니다.
참고 자료
- Washington State University Extension — Tips for Growing Sweet Potatoes (PDF)
- Cheap Vegetable Gardener — Planting Sweet Potato Slips in the Pacific Northwest
- Tiny Garden Habit — Sweet Potatoes Too Small? Here's What You Need to Know at Harvest
- Purdue University Yard and Garden — Question and Answer: 들쥐(vole) 피해와 철망 보호
- Oregon State University — Sweetpotato (Oregon Vegetables)
이 글은 가정 텃밭을 위한 일반 정보와 개인 경험을 정리한 것입니다. 지역과 밭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